보도자료

시청각서비스 개방, 문제점과 대응책

2003.04.14 Views 3784

시청각서비스 분야의 개방,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방석호 / 홍익대학교 법학과 교수


정부는 내년 말 종료가 예정된 WTO 서비스 협상을 위한 1차 양허안을 확정하면서 시청각서비스 분야는 일단 제외하기로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미국 주도의 다자간 협상을 앞둔 우리 쪽의 희망 전략을 발표한 것에 불과하고 앞으로 301조를 앞세운 미국과의 쌍무협상에서 시청각서비스 문제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둔다면 이 문제가 끝났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과 선진국이 시청각서비스 협상을 통해 우리에게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먼저 다음의 세 가지 포인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환경 열악하면 시장 자체가 무너진다

  첫째 개방을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자본, 컨텐츠의 개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 신규사업자가 사업을 할 수 있는 시장 자체의 개방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고 각각의 대응 방안을 제시하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고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환경이 열악하고 준비가 소홀하다면 궁극적으로는 시장 자체가 개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외국에서는 미디어 융합(Media Convergence)에 따른 거대 기업들이 속속 출현하고 융합에 따른 규제 기관의 통합 문제도 법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의 방송사들은 국내 통신사업자에 비할 때에도 현저한 자본력 열세를 보이고 있고 이는 곧 디지털 컨텐츠 시장에 대한 투자와 유통의 열세, 해외 시장 개척 미비로 인한 국내 시장의 상대적 협소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설사 법으로 외국 미디어 기업들의 국내 시장에 대한 자본 참여 확대 요구를 막고 스크린 쿼터와 방송프로그램 쿼터 규정으로 외국 컨텐츠의 유입을 막는다고 하여도 시장의 영세성과 낙후성 등으로 수급 상황이 뒷받침되지 못해 법 자체가 지켜지지 못한다면 결국 좁은 시장 자체가 무너지고 개방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응 방안 역시 보다 종합적이고 치밀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자간 협상 구조에서 개방 반대만을 고수하기는 어렵다

  둘째 협상 구조에 대한 이해이다. 흔히 시청각서비스의 개방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프랑스가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의 협상 전략 역시 프랑스의 예를 들어 충분히 보수적으로 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견들이 많이 있다. EU의 대외적 협상권은 위원회(Commission)가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DDA 협상에서도 프랑스는 위원회의 한 멤버로 참여하게 되고, 따라서 협상의 대표가 된 위원회로서는 회원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구체적 쟁점에 대해 개방 여부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자간 협상 테이블에 단일 국가로 참여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경우를 들어 마냥 버틸 정도의 협상력을 구조적으로 가질 수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의 우회전략 파악하고 대응 모색

  셋째로 WTO가 분류한 시청각 서비스 분야와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주력 개방 업종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WTO가 개방 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시청각서비스는 모두 6가지 분야이며, 이 가운데 영화 및 비디오제작․배급, 그리고 음반서비스는 이미 국내 시장이 개방되어 있는 상태이고, 추가로 개방 여부를 결정하게끔 압력을 받고 있는 분야는 영화상영서비스, 라디오․TV서비스, 라디오․TV전송서비스, 그리고 기타 서비스의 4개이다. 아직까지 개방되지 않는 ‘영화상영서비스’는 소위 ‘스크린쿼터’ 문제로 잘 알려져 있고, ‘라디오․TV서비스, 라디오․TV전송서비스’ 역시 방송에 대한 외국 자본 참여나 프로그램 쿼터의 문제로 알려져 있어서 우리가 추가로 개방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즉 ‘스크린쿼터’ 문제는 미국이 일찍이 1961년부터 GATT의 틀 속에서 문제 제기를 하였지만 UR에서 타결되지 못함으로써 국내 영화를 일정 시간 이상 상영할 수 있는 권한을 각국이 갖게끔 GATT에 여전히 규정되어 있고 (제 4조), 방송에서의 ‘TV 프로그램의 쿼터’ 역시 막판까지 미국과 EU가 줄다리기를 하였지만 결국 타결을 보지 못하고 만 큰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유럽은 EU 역내 TV 방송국 방영시간의 51 % 이상을 유럽산 필름으로 방영토록 한 EU 지침(Directive)을 가지고 있고, DDA 협상에서도 시청각서비스 분야의 추가 개방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은 5개의 협상 목록을 나름대로 제시하면서 ‘극장용 영화’ 하나만 하더라도 영화관 상영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트럭, 위성 또는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영화의 상영관 전송’을 포함시켰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초고속망을 이용한 컨텐츠 전송의 기술적 비교 우위를 살려 ‘가정용 비디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전송 서비스’ 분야를 협상 목록에 새롭게 추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UR의 시청각서비스 협상과 달리 이번 미국의 요구는 지상파 TV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 위성, 초고속통신망 등 모든 뉴미디어 분야를 포괄한 전방위 개방 의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UR 타결 이후에도 미국의 USTR은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현재의 프로그램 쿼터 규정이 과거의 지상파 방송만을 대상으로 하던 것이기 때문에 위성, 케이블 TV와 같은 새로운 매체에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하며 따라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자는 주장을 계속적으로 펼침으로써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고, 유럽산 프로그램 자체가 실제 가격도 비싸고 물량도 부족하기 때문에 법에 정한 쿼터 비율을 채우기가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임을 고려한다면 미국의 요구는 UR 때와 비교, 쉽게 배척되어질 수 있는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결국 미국의 의도는 영화의 경우만 하더라도 종전에는 극장이 가장 중요한 유통 창구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지금은 유무선 통신기술의 발달로 극장을 통하지 않는 영상배급이 많아지고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디지털 영상물 시장이 급팽창함에 따라 스크린 쿼터와 방송프로그램 쿼터의 장벽을 뛰어 넘어 다른 컨텐츠 배급 경로의 자유화를 통해 시청각서비스 시장 자체를 개방토록 공략하겠다는 우회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시장 개척과 국내시장 여건 정비 필요

  이런 점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어떤 방안을 마련하여야 하는가?
  멕시코까지 포함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 에서 문화산업에 대한 적용 예외규정이 있음을 들어 우리도 미국의 요구에 맞서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미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문화산업의 제한적 규제행위에 대하여 “대등한 상업적 효과”를 갖는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더욱이 그런 식의 감정적 대응으로는 현실적으로 드러난 우리 스스로의 취약한 점을 해결할 시간을 벌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먼저 구조적으로 컨텐츠 분야의 만성적 무역 역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왜 미국은 반대로 엄청난 흑자를 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체계적이고도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적 경쟁력 측면을 도외시하더라도 미국은 시장 자체가 거대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 이점을 바탕으로 성공에 따른 위험부담이 많은 컨텐츠 산업에서 투자 자금의 회수가 용이하고 국제 시장에서도 쉽게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시장 자체를 키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시청각 서비스의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시장의 적극적 개척으로 나타나게 되고, 국내 시장에서의 컨텐츠 제작, 유통을 둘러싼 시장 여건의 정비로 나타나게 된다. 특히 디지털로의 전환을 앞둔 뉴미디어 분야에 대해서는 외국 자본의 투자 참여폭을 더욱 넓혀서 국내 통합미디어 그룹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한편, 기존 쿼터제를 통한 수세적 방어전략을 수정, 국제 공동제작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지원금(incentive)제도 등과 같은 간접 지원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UR이 타결된 후에도 EU는 독립프로그램 제작사에 대한 전체 방송시간 혹은 제작비용의 최소한 10% 할당을 의무화하는 지침을 운영하고 있고, 시청각 서비스 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특별 지원금(보조금이 아님) 제도를 만든 바 있으며, 나라에 따라서는 세제상의 혜택이나 제작비용의 지원책들을 앞다투어 시행하기도 하는 등의 예는 DDA 협상이 타결된 뒤에라도 우리 정부가 취하여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