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 광고금지/제한 절대 안된다
200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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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적 광고 규제의 위험성
김이환(한국광고주협회 상근부회장/언론학 박사)
“소비자는 멍청이가 아니다. 그들은 당신의 아내만큼 똑똑하다”(The consumer isn’t a moron. She is your wife). 현대 광고인의 대부 격인 데이비드 오길비(David M.Ogilvy)는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제멋대로 소비자들의 반응을 재단하는 것을 경계했다.
지금 이 말을 세계 10위권의 광고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에 되묻고 싶다. 우리는 소비자들을 ‘합리적이고 똑똑한 경제주체’로 대접하는가, 아니면 규제정책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멍청한 군중(衆愚)’으로 생각하는가.
광고는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는 효율적 수단이라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그동안 경제정책적 측면에서 상당히 푸대접을 받아왔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 마다 손쉽게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광고규제’가 도입됐던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이미 술 광고를 금지하여 술 소비를 줄이겠다는 정책 시도가 있었다. 이 법안은 광고 규제가 곧 주류 소비를 줄인다는 직접적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한계가 드러나며 슬며시 없어진 바 있다.
최근 정치권은 어린이들을 유해식품으로부터 격리시키겠다는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특별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초등학생은 물론 고등학생까지, 이들이 즐겨 먹는 기호식품에 영양표시를 신호등 형태로 표시하고, 학교와 학교 주변 200m 이내를 식품안전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우수한 식품생산업자를 ‘건강친화기업’으로 지정하는 등으로 향후 5년간 1조2천억원 가량의 예산을 쓰겠다는 것이다.
‘약방의 감초’격인 광고규제도 또 들어갔다. 발의안 대로라면 오는 2010년부터는 지방, 당, 나트륨 등이 많이 들어가 비만이나 질병 발생의 원인이 될 우려가 있는 식품은 광고시간을 제한받거나 금지된다.
어린이의 건강을 위한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영양과잉과 비만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어린이의 건강이 진짜로 지켜진다면 더 엄중한 규제를 한다고 해도 적극 환영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발상이 사안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거치고 제기됐는가 이다. 쉽게 말해 식품업계가 추계한 데로 최대 8조원의 피해가 발생하고, 헌법상 보호돼야 할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가 위축되는 대가를 치루고 나면 어린이 비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세계적으로 어린이 비만 문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광고를 제한하면 비만이 줄어든다는 결론은 아직 없다. 실제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게 광고를 규제하는 스웨덴의 경우 어린이 비만율은 여타 국가와 차이가 없으며, 광고가 자유로운 네덜란드의 경우 오히려 비만율이 더 낮다. 양국 어린이들의 운동량 차이가 원인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역시 추정일 뿐이다.
어떤 이는 어린이 건강을 위한다는 데 광고 좀 규제하고 피해가 조금 생겨도 어떻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진짜 문제다. 사회적 이슈를 원인부터 철저하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려는 편의주의적 사고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어린이 비만 문제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에 나서야 한다. 유해성분이 문제라면 먼저 정확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지켜나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식품안전의 문제는 ‘광고규제’가 아닌 ‘안전규제’로 푸는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조건 기업을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 보다는 먼저 어린이들에게 건강한 생활을 위해 운동을 장려하고, 현명한 식생활 습관을 만들도록 교육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선행해야 한다. 정말 규제가 필요한 경우에도 먼저 관련 업계가 자율규제를 실시하고 그래도 안되면 타율적인 정부규제를 하는 것이 순서다.
‘규제정책’에는 규제를 당하는 사람 보다 규제를 하는 사람이 우월하다는 위험한 전제가 숨어 있다. 소비자는 생각보다 더 똑똑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마음이 급해도 과학과 상식이라는 원칙을 꾿꾿히 지켜가는 것, 정부 기업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충분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열어두는 것. 이러한 가치관들이 자유시장경제와 우리 사회의 합리성을 지켜나가는 초석이란 점을 다시 제기해 본다.